살다 보면 차마 다시 꺼내어보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꽉 막혀오고, 어두운 방 안에 혼자 남겨진 것처럼 두려움이 엄습해 오곤 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 기억을 마음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담아둡니다. “이제 다 지난 일이야”, “괜히 떠올려봤자 나만 힘들지” 하며 잊은 척 일상을 살아가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애써 누르려 할수록, 조그만 자극에도 그 시절의 아픔이 불쑥 튀어나와 지금의 나를 흔들어 놓곤 합니다.
상담실을 찾는 많은 분들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선생님, 과거의 상처를 다시 꺼내어 보는 게 너무 무서워요. 그때로 다시 돌아가는 것만 같아요.”
1.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마음의 방어작용입니다
과거의 상처를 다시 바라보기 두려운 것은 결코 당신이 약해서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우리 뇌와 몸은 또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 아픈 기억 근처에는 아예 접근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경보 장치를 켜두는 것입니다. 즉, 두려움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마음이 보내는 자연스러운 방어 신호입니다. 그동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애써왔는지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2. 혼자서 다 짊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혼자서 아픈 기억을 들여다보는 것은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 혼자 배를 띄우는 것과 같습니다. 당연히 두렵고 압도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심리치료나 전문 상담은 그 폭풍우 속으로 혼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안전한 항구(안전지대)를 먼저 든든하게 구축한 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밧줄을 서로 묶고 함께 조금씩 다가가는 과정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순간이 오면 언제든 멈추고 쉬어갈 수 있습니다.
3. 기억을 마주한다는 것은,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를 마주하는 작업은 아픔을 다시 겪는 괴롭힘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는 비록 무력하고 힘들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달리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사실을 내 몸과 마음에 확인시켜 주는 과정입니다.
과거의 기억에 갇혀 있던 ‘그 시절의 나’에게 찾아가, “이제는 괜찮아, 내가 너를 안전하게 데리고 올게” 하고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는 일입니다.
4. 오직 당신의 속도(Pacing)만이 정답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는 정해진 기한도, 빠르게 달려가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잠시 문 앞에 서서 숨을 고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한 걸음 내딛고 다시 반 걸음 물러서더라도, 나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바라보려는 그 작은 시도 자체가 이미 위대한 치유의 시작입니다.
마음 깊은 곳의 기억을 꺼내어보는 일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혹시 지금 과거의 기억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그 상처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자책하고 계신가요?
그동안 마음을 지키느라 애쓴 스스로를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당신이 준비되었을 때,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에서 당신의 속도에 맞춰 한 걸음씩 함께 걸어가겠습니다.
